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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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진의 희곡.
2009년 겨울, 선물받아서 슥- 읽고서 다른 이에게 선물했던 책.
얼마전 '파리코뮌'을 알고싶어서 다시 봐야겠다 생각했다.
벌써 일년 반 전인가? 그땐 생소해서 그닥 와닿지 않고 대충 넘어갔던 부분들도 콕콕 와서 박힌다. 다가온다.
이렇게 느끼는 것, '내가 자라긴 했구나. 시간이 그냥 마냥 흘러가버린 건 아니구나.'
헤엣 위로받는 느낌 _*
얼마전 공산당선언을 다시 봤다. 그래서 하워드진의 머리말부터 완전재밌었다.
으꺄 책을 통째로 와구와구 씹어먹고싶다. 버릴만한 구절이 거의 없다.
나는 열일곱 살 무렵에 공산당선언을 처음 읽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나의 삶에서 본 모든 것과 아버지의 삶 그리고 1939년 미국이 놓여있는 상황이 모두 분명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뚜렷하게 설명되고 정확하게 분석되는 것 같았다. .. 우리아버지가 아무리 뼈 빠지게 일해도 아내와 딸린 자식 넷을 부양하기 힘든 것을 익히 보아왔다. .. 이 나라에는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도 엄청난 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체제가 공평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내가 경험하고 책에서 읽고 있던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19세기 영국이나 불경기에 빠진 미국에서만 일어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보편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임을 알았다. ..이 체제는 매우 공고한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는 역사의 한 발전단계에서 나타난 것이고, 따라서 언젠가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계급으로서 대립해 있고, 따라서 이들의 갈등은 개인간의 사소한 갈등이 아니라 아주 기념비적인 것이 되었다.
온갖 복잡한 경제적 계약 뒤에는 어떤 핵심적인 사실이 있었다. 모든 가치의 원천은 노동이었고, 노동은 자신이 받는 보잘것없는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했다. 그리고 그 잉여가치는 자본가 계급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자본가는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실업, 즉 '산업 예비군'이 필요했다. 자본주의는 사람보다 물질을, 특히 돈을 더 소중히 여겼고(상품 물신주의), 삶에 유용한 것은 모두 그것의 교환가치에 의해 평가되었다.
착취와 계급투쟁은 세계사에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니며, 단지 자본주의에서 그것이 가장 심화된 형태로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뿐이다.
나는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되어 주류 언론과 정치 지도자들이 거의 미친 듯이 기뻐 날뛸 때 이 희곡을 썼다. 왜냐하며 그들이 볼 때는 자신들의 '적'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사상 자체가 불신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승리를 거두고, 마르크스주의는 실패했던 것이다. ...
나는 소비에트연방은 물론 '마르크스주의'를 지향한다면서 실제로는 경찰국가를 세웠던 나라들이 결코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이 무자비한 스탈린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왜곡된 것을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계 곳곳에서 억압적인 통치 체제를 구축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 자본주의의 승리에 자못 흡족해하는 서구 정치가와 저술가들로부터도 마르크스를 구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오늘날에도 근본적으로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분석이 옳다는 것은 날마다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사건들이 명명백백히 입증해 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그의 시대에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의 유례없는 속도와 혼동을 보았고, 이것은 오늘날 한층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조건의 부단한 교한,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는 부르주아 시대를 그 이전의 모든 시대와 뚜렷하게 구분 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된 견고한 관계가 낡고 고색창연한 편견 및 의견과 함께 한순간에 날아가 버리고, 새롭게 형성된 관계 역시 미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모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견고한 것이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선언』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세계화'라고 하는 것도 마르크스는 분명히 예견했다.
"자신의 생산물을 팔 시장을 끊임없이 확장시켜야 할 필요성은 부르주아지를 전지구상으로 내몬다.그래서 부르주아지는 모든 곳에 둥지를 틀고, 모든 곳에 뿌리를 내리고, 모든 곳에서 연고를 맺어야 한다. ...예전에 한 지역이나 한 나라에 틀어박혀 자급자족하던 때와 달리, 이제는 사방에서 왕래가 이루어지고 국가들 사이에 보편적인 상호 의존이 나타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에서 추진한 '자유무역협정'은 자본이 전지구상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자본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을 모두 제거하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이것은 자본가에게 세계 모든 곳에서 민중을 착취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저 새롭게 공급되는 범죄자들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수많은 범죄자를 낳은 체제를 바꾸는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물건이 안장에 앉아 인류를 몰고 간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경제학 철학 수고』에서 마르크스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에 관해 쓰고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인간관계로부터, 자기 자신의 진정한 자아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이로 인해 우리는 물질적인 고통뿐 아니라 심리적인 고통도 겪는다.
우리는 그가 자본주의에 관해 말하는 것에서 충분히 착취없는 사회, 사람들이 자연과,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 자신과 하나 됨을 느끼고 인간관계에서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사고방식이었어요. 참 난감한 사람이었지요. 마치 위성처럼 내 말 주위만 빙빙 돌며, 자기 딴에는 내 말을 세상에 그대로 전한다면서 왜곡하기 일쑤였으니까요. 게다가 그는 그렇게 왜곡시킨 것을 무슨 광신자처럼 무조건 옹호하고 나섰지요. 그걸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은 막무가내 비난하면서 말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알아?
혁명은 일어날 거야. 그런데 ...
권력이 없을 때는 알랑거리는 아첨꾼이다가 권력을 잡으면 난폭한 깡패로 변해 큰소리나 뻥뻥 치는 허풍선이가 되는 사람들 말이야. 이런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변한다면서 내 사상을 세상에 해석해 줄 거야. 그리고 새로운 성직 계급을 조직하겠지. .. 새로운 위계질서 말이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질 거야. 자유가 있는 공산주의는 한 백 년쯤 뒤로 미루어 놓고, 세계를 자본주의 제국과 공산주의 제국 두 개로 나누고 말이지. 그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꿈을 짓밟고, 그 꿈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기 위해 또 다른 혁명을 감행할거야. 어쩌면 그게 두 번 세 번이 될지도 몰라."
*
지난해 미국 국민총생산은 7조 달러였다. 정말 굉장합니다.
그런데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그 돈이 다 어디 있지요? 이로써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고?
불과 500명도 안 되는 개인이 2조 달러의 기업자산을 주무른다.
그럼, 한번 물어봅시다. 이 사람들이 싸구려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이 셋을 키우며 난방비 낼 돈도 없이 겨울을 나는 어머니보다 더 고귀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사회에 가치가 있습니까? ???
150년 전에 내가 자본주의는 사회의 부를 엄청나게 증가시키지만 그 부가 갈수록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케미컬 은행과 체이스 맨해튼 은행의 대대적인 합병. 노동자 2천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주가는 상승하고."
"재난을 재촉하며 땅이 황폐해지고 약탈당하니, 부는 쌓여 가는데 인간은 쇠락해 가는구나."
아, 시장경제는 정말 놀라운 힘을 가졌습니다! 인간을 한낱 상품으로 전락시키고, 인간의 삶을 최고의 상품인 돈이 좌지우지하게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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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그날 일어난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아일랜드 사람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쟁, 나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벌이는 행태, 진짜 중요한 문제는 제쳐두고 자질구레한 일에만 매달리는 야당, 겁쟁이 언론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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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분명히 나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그 구절 전체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없었지요. "종교는 억압받는 자의 탄식이요, 냉혹한 세상의 따뜻한 가슴이며, 영혼없는 세상의 영혼이다." 예, 아편은 물론 어떤 해결택도 주지 않지만, 고통을 더는 데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끔찍한 고통들이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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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분석하지 말래? 하지만 이것도 『선언』처럼 강력하게 외치란 말야. 지금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그럼 독자들이 얼마나 흥미진진해 하겠어 ... 지금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사회의 부는 엄청난 상품의 집적으로 나타난다."
"독자들이 읽다가 잘 거야."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서 나타나, 엄청난 생산력 증가와 전세계 부의 어마어마한 증가를 가져왔는지 보여주고 있지요. 그리고 본성상 자본주의 체제는 그 부를 노동자의 인간성뿐 아니라 자본자의 인간성까지 파괴하는 방식으로 분배하게 된다는 것도.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원래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게 되어 있어, 결국은 훨씬 인간적인 체제에 자리를 내주게 되어 있다는 것도 보여줍니다.
"우리가 다가가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다가가고 있을까?"
"당신은 검열 당국이 왜 이 책의 출판을 허락했는지 알아?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
예니는 내가 잉여가치론을 평범한 노동자들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먼저 노동가치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왜 노동력이 생계유지비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면서도 다른 모든 상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그것도 항상 노동력의 가치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특수한 상품인지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어느 누구든 잉여가치론을 이해할 수 없어."
그러면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습니다. "아니, 그러면 안 돼. 당신은 그냥 이렇게만 말하면 돼. 그러니까 여러분의 고용주는 여러분이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임금을 준다. 그러니까 간신히 생존하면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만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주는 여러분의 노동력에서 여러분에게 지불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 그래서 여러분은 계속 가난한데, 고용주는 갈수록 부자가 된다."
"당신의 지식인 독자들은 잊어 버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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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적이고, 민족적 편견에 기대고 있으며, 전쟁으로 국민의 피와 재산을 낭비하는 외교 정책에 맞서,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 합니다. 국제 문제에서 도더과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너무도 단순한 법을 지지하기 위해, 우리는 국경을 뛰어넘어서 연대해야 합니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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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소비에트가 붕괴되었으니 공산주의도 죽었다고 합니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이 얼간이들은 공산주의를 뭐로 알지요? 동료 혁명가를 살해하는 암살자가 통치하는 체제가 공산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바보 얼간이 같은 놈들!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그 사회의 계급과 계급 갈등 대신에, 우리는 각 개인의 발전이 모든 사람의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갖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의 목표. 개인의 자유! 동정심 있는 인간 존재로서 자신을 계발하는 것!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을 총살하는 것 - 그것이 어떻게 내가 평생을 바친 공산주의일 수 있습니까? (성난 목소리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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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와 같은 법죄를 낳은 사회 조건을 없애고, 개인이 저마다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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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의 독재, 중앙위원회의 독재, 일인 독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말한 것은 노동자 계급의 일시적인 독재였습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아래서는 민중 대다수가 국가를 접수하여 모든 사람을 위해 통치합니다 - 국가 자체가 필요 없어져 점차 사라질 때까지 말입니다.
나폴레옹 3세. 보나파르트의 조카. 그는 어릿광대였습니다. 천 육백만 농민이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어두컴컴한 오두막에서 살고 그 자식들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군중들을 향해 미소를 흘리는 연극배우 말예요. 그러나 그 나폴레옹 3세는 의회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었고, 국민들이 투표를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일반적으로 하기 십상인 착각이었지요.
보나파르트는 찬란한 영광을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비스마르크 군대를 공격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금방 무너져 버렸고, 이에 의기양양해진 비스마르크 군대는 파리로 진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총부리보다도 무서운, 침묵이었습니다. 그들은 파리의 조각상들이 상복을 걸치고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말없는 저항을 말입니다. 비스마르크 군대는 현명했습니다. 행진을 하여 개선문을 통과해서는 서둘러 떠났으니까요.
그리고 프랑스에는 다시 공화제가 들어섰습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자들은 - 예,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 감히 파리로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요. 독일 군대가 떠나자 이제 파리는 노동자와 가정주부, 사무원, 지식인, 무장한 시민들이 장악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파리의 민중은 정부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어떤 정부든 두려워하는, 즉 민중의 집단적 에너지인 코뮌을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뮌 드 파리였습니다!
프랑스 군대가 파리를 겹겹이 에워싸고 한시라도 쳐들어올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을 때, 파리 시민들은 도시 곳곳에서 하루 24시간 내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을 내렸지요. 그리하여 파리는 세계 최초의 자유 도시, 전제 정치에 둘러싸인 세계 최초의 해방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뭔지 알고싶어? 그럼 파리 코뮌을 봐. 그게 진짜 민주주의야."
선거가 일종의 서커스가 되어버린 영국이나 미국의 민주주의, 사람들이 결국은 구질서의 수호자 가운데 한 사람을 뽑아, 어떤 후보가 이기든 여전히 부자가 통치하는 나라의 민주주의가 아닌진짜 민주주의 말입니다.
파리 코뮌, 그것은 몇개월밖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파리 코뮌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한 합법적인 정치기구였죠. 파리코뮌에서는 법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부채를 탕감하고, 집세의 지불을 유예하고, 전당포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생활필수품을 되돌려주게 했습니다. 코뮌 사람들은 노동자보다 워릅을 많이 받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빵 굽는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도 줄이고, 누구나 극장에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도 계획했지요.
획기적인 그림으로 유럽을 강타한 위대한 화가 쿠르베는 예술가협회를 주도하였습니다. 그들은 박물관 문을 다시 열고, 여성 교육을 위한 위원회를 열었지요. 아! 여성교육. 그래요,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들의 교육 운운하는 것은 전대미문의 놀라우누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최신 과학 발명품인 기구도 이용했습니다. 기구를 하늘 높이 띄워 파리 바깥에 사는 농민들에게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 세계 모든 곳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 "우리의 이해관계는 같다"는 메시지가 담긴 삐라를 뿌렸습니다.
코뮌은 학교는 "아이들에게 자기와 똑같은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교육 문제를 놓고 끊임없이 토론하는 걸 들었습니다. 하지만 난센스! 그런 난센스가 없더군요. 학교에서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모두 가르치치죠.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정의를 위해 투쟁하라고는 가르치나요?
파리 코뮌을 세운 사람들은 그 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로만 가르친 게 아니라 행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전제 정치의 도구이며 심지어는 전제적인 혁명 정부의 도구로도 쓰였던 단두대를 없애버렸지요.
그리고 붉은 스카프를 두르고, 커다란 붉은 깃발을 펼쳐 들고, 붉은 비단 천으로 건물을 장식하고, 군사 권력의 상징이며 그 위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청동 두상이 얹혀 있는 방돔 기둥 주위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 머리에 도르래를 걸치고 캡스턴을 돌려, 청동 두상을 바닥에 떨어뜨려 박살을 냈지요.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가니, 나폴레옹의 두상을 떠받치고 있던 받침대 위에 붉은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그것은 이제 한 나라의 받침대가 아니라 온 인류의 받침대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 바로 그게 파리코뮌이엇습니다. 거리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찼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언제나 토론이 벌어졌지요. 사람들은 서로 나누고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이전보다 훨씬 자주 웃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 친절하고 상냥했지요. 거리에는 경찰의 '경'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안전했습니다. 예,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였습니다!
물론 이런 본보기를, 파리코뮌과 같은 본보기를 그냥 놔둘 수 없었겠지요. 마침내 공화국 군대가 파리로 진격해 들어와 대대적인 살육을 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뮌 지도자들을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로 끌고 가 돌담에 줄지어 세워놓고 총살했지요. 그리하여 무려 3만명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코뮌은 잔인하고 탐욕스런 사람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렇지만 파리코뮌은 우리 시대가 이룩한 가장 빛나는 성과였지요...
그들은 파리코뮌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코뮌은 위험하기 짝이 없었으니까요. 온 세계를 뒤흔들 고무적인 사건이었으니까요. 마침내 그들은 코뮌을 피바다 속에 빠뜨려 익사시켜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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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어디선가 사람들이 - 무슨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삶에 분노하여 - 옛 질서를 밀어내고 새로운 생활 방식을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그걸 결코 가만히 놔두는 법이 없습니다. 이런 움직임이 있으면 그들이 - 여러분은 내가 말하는 그들이 누군지 알 겁니다 - 때로는 교활하고 은밀하게 때로는 대놓고 폭력적으로 파괴해 버리려고 들죠.
그래서 그들이 계속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승리했다고요? 어째서요?주식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고 주식을 소유한 사람들이 전보다 훨씬 부유해졌다고 해서? 승리했다고? 미국 어린이의 4분의 1이 빈곤에 허덕이며 살고 있고, 그 가운데 4만 명이 해마다 돌도 채 넘기지 못하고 죽는데?
"뉴욕 시에서는 2천 개의 일자리를 놓고 그중 하나를 얻기 위해 동이 트기 전부터 10만 명이 줄을 섰다." 그럼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서는 9만 8천 명은 어떻게 되지요? 그래서 여러분은 감옥을 더 짓고 있는 건가요? 예, 자본주의는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요?
여러분은 과학기술에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고 사람을 성층권에도 보냈지만, 지상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왜 그들은 그렇게 두려워하지요? 왜 마약에 빠져들고, 술에 빠져들고, 왜 그렇게 광포해져서 사람을 죽이지요?
여러분의 정치가들은 자만심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바야흐로 세계는 '자유 기업 체제'로 나아갈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 모두들 바보가 되었나요? 그들은 자유 기업 체제의 역사를 전혀 모르는 겁니까? 정부가 부자들을 위해서는 모든 걸 다하면서 민중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던 그 때를요? 여러분의 정부가 철도회사에는 수천 만 에이커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땅을 무상으로 주면서도, 그 철도에서 중국과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하루 12시간씩 노동하며 더위와 추위를 못 이겨 죽어가는 것은 못 본 체하던 때 말입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반란을 일으키면, 정부가 나서서 그 노동자들을 박살내기 위해 군대를 보내던 그 때를요.
내가 본 자본주의의 참상, '자유기업체제'의 참상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내가 왜 『자본론』을 썼겠습니까? 영국에서는 아이들도 그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방추를 다룰 수 있다고 어린아이들을 방직 공장에 보냈고, 미국에서는 어린 소녀들이 열 살에 매사추세츠에 있는 공장에 들어가 노예와 같이 일하다가 스물다섯에 죽었습니다. 도시는 악과 빈곤의 소굴이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
그런데 여러분은 보는 건 많은데 아는 게 너무 없어요!
어디, 역사 읽은 사람 누구 없습니까? (화가 나서) 요즘은 학교에서 도대체 뭘 가르칩니까? (그 때 위협하듯 불이 번쩍인다.)
그렇지만 자본주의는 변할 겁니다. 현재의 체제가 모두 변할 겁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니까요.
예, 자본주의는 인류의 역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자신의 무덤 또한 파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탐욕은 세상을 혼란의 구렁텅이에 빠트립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예술, 문학, 음악, 심지어는 아름다움 자체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인간도 상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공장 노동자뿐 아니라 의사, 과학자, 법률가, 시인, 화가도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두 자신을 팔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두 자신이 노동자이고 따라서 공동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연대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기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요.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세계 시장이 필요하니까요.
자본주의가 왜 '자유무역!'을 외치는지 아세요?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이 지구상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닐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자본주의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세계 문화를 만들어내지요. 사람들이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국경을 넘나들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새로운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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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산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일에서 소외된다... 그리고 기계와 매연, 악취, 소음이 사람들의 감각에 침투하면서 - 사람들은 이것을 이른바 진보라고 부릅니다만 - 자연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사람들은 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며 서로 적대하면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어나면서, 서로에 대해서도 소외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이 아닌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정말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런 삶은 꿈이나 환상 속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소외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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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예, 물론 나도 그것이 가능성일 뿐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이제는 그게 분명해졌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젠 나도 압니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사람들은 엉덩이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떨쳐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에겐 내 말이 너무 래디컬하게 들리세요? 그러나 명심하세요. 래디컬하다는 것은 바로 문제의 뿌리를 파악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내가 제안 하나 하겠습니다. 일단 여러분 엉덩이에 뾰루지가 났다고 가정하세요. 그래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으면 너무 아파서 당장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은 움직여야 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이제 더이상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말은 하지 맙시다. 그냥 이 지구의 엄청난 부를 인류를 위해 쓰자고 합시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도록 합시다. 식량과 의약품,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나무와 풀, 즐거운 가정, 몇 시간의 노동과 그보다 많은 여가시간을 줍시다. 그리고 그걸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묻지 마세요. 인간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요.
'문제의 뿌리' '그 뿌리가 바로 우리'
이 부분을 보고, "그 뿌리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는 말이 이해가 안됐었다.
왜 우리가 '문제(부정적으로 다가오는)'의 뿌리라는 거지??릉릉??
코끼리 다리만 바라보며 '기둥 아냐?'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앞 뒤를 보고, 전체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
앞으로의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모든 시간은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과거 선택해온 것들이 우리를 만들었을테니. 문제의 진정한 뿌리는 '우리'다.
http://www.left21.com/article/7567
2010년 1월, 하워드진 추모기사가 신문에 실렸다.
하워드 진의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도 읽고싶다.
"하워드 진은 모든 미국 좌파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였다. 특히 우리가 힘든 투쟁을 벌이고 승전보가 드물었을 때 말이다. 진의 글은 우리에게 억압에 맞선 저항이 계속될 것이며 보통 사람의 투쟁이 세상을 바꿀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쳐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