奧宣曦 : starry miaow : SUNNY :-)

-정리되지 않은 글. 그냥 생각나는대로 씁니다. 정리하기위해, 정리하고싶어서 씁니다. 차차 정리하려고 합니다-

아나키즘은 다양하다. 아래에서 말하는 아나키즘은 그 다양한 것들 중 내가 생각했던 아나키즘일 뿐이다.




고딩, 아나키스트 

나는 자칭 아나키스트였다.
이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조선의 아나키스트 이회영을 통해서 아나키즘을 알게 됐다.
고등학교 2학년, 근현대사 수행평가였다. 한 인물을 정해서 조사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회영.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고통받던 조선 사람.
미국도 소련도,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평화와 생명의 대안을 꿈꿨다. 
공동체를 만듦으로써 대안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크로포트킨 자서전을 샀다. 시도는 여러차례 했지만 결국 읽지는 못했다.








대딩, 혁명적 사회주의자

대학에 와서 '다함께'에서 주최한 강연회에 갔다.

강연장에 붙어있는 이 글귀를 봤다.


이윤보다 사람을
경쟁보다 연대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차별이 아닌 존중을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이 길에 당신과 함께하고싶습니다.
다함께에 가입하세요.


이 몇글자 되지 않는 글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가입했다.
온갖 차별과 억압에 반대하는
반전 반신자유주의 단체 다함께였다. (지금은 노동자연대 다함께로 바뀜)


그런데 얼마후 반자본주의 다함께라는 것을 알게됐다.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라는건가?
'사회주의'라면 그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사회?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사회주의'는 스탈린주의였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내가 꿈꿨던 그 사회였다.
전쟁이 없고, 차별과 억압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






현실적

아나키즘은 대안사회라는 방향성은 있지만, 그 곳으로 가는 방법이 비어있다.
너무나 이상적이다.
지금 이 사회구조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권력구조를 간단히 제낄 수 있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정말 이 사회의 변화를 바란다면,
진지하게 대안사회로 가는 방법을 고민한다면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다수 노동자계급을 착취하고 있는 이 사회, 이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는 정말로 현실적이다.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우리가 노동계급의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
억압받는 수많은 사람들 중 노동계급만 해방돼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억압 문제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출발점은 언제나 피억압자들과의 연대였다.
레닌의 유명한 말을 빌리면,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온갖 형태의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

 - 다함께의 소책자, 21세기 사회주의, 억압에 맞선 투쟁과 연대 中




노동계급 중심성

"노동자들이 가장 중요한 세력인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해관계와 상반되는 이해관계가 있는 조직들 가운데 노동계급 조직이 가장 견고하기 때문이다."

 - 다함께의 소책자, 개량주의와 변혁전략,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 中




"자본과 노동은 착취를 둘러싼 서로 적대적인 관계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해서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노동자계급은 다른 계급과 달리 자본가들의 이윤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평상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이윤 생산의 원천이지만, 그들이 노동을 멈추면 이윤 생산에 결정적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학생들 수만 명이 시위를 한다고 생산에 차질을 빚지는 않지만, 
자동차 노동자들이 단 4시간만 파업해도 생산에 수백억 원의 손실이 생긴다."

- 다함께, 맑스주의를 옹호하며 준비호 (2005.5-6), 맑스의 계급이론과 노동자 계급 중심성 中







이 세상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모순적인 것은 한둘이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도 모순적이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했지만, 동시에 자본주의를 끝장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다.

온갖 억압을 낳는 이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서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투쟁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동참하지 않는 투쟁이라면 자본주의를 넘어뜨릴 수 있는 진정한 힘이 나올 수 없다.









사회주의 혁명

'혁명'이란 단어는 폭력과 억압을 연상시킬 수 있다. 
내가 자칭 아나키스트일 때, 혁명에 대해 반감을 갖고있던 이유다.



하지만

"사회주의 혁명의 요체는 사실 "폭력"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 내에서 진정한 대중적 권력을 창출하는 문제이자, 민주주의를 어마어마한 규모로 확대하는 문제다.

사회주의 혁명의 핵심적 의미는 
노동계급 대중이 기존의 상명 하달식 권력 기구들에 도전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 - 그들의 일상생활에 뿌리를 둔 - 을 창출하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의지를 매개하는 수단이 되려면 그러한 제도들은 민주적이어야만 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아래로부터의" 과정이어야만 하고, 수백만의 능동적 참가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하게 된다.



대중적 혁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지배계급을 타도하기 위한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결집의 효과, 즉 사람들이 함께 투쟁에 나설 때 그들 자신이 겪는 정신적 변화들이다.
한 세기 전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모든 혁명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축제"라고 썼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변혁한다는 것 말이다.

대중적 혁명은 다른 세계의 필수적 기초인 인간 본연의 사회적 창조성과 집단적 능력을 해방시킨다. 
자본주의는 그러한 잠재력에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혁명은 그 자물쇠를 깨뜨리는 과정이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집단적인, 즉 공동의 과정이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은 
우리가 고립되고 무기력한 개인들 - 전지전능해 보이는 지배자들에 비해 힘 없고 보잘 것 없는 - 이 아니라는 인식에 달려 있다.
혁명이 지배계급 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자신에게도 언제나 놀라운 경험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른 어떤 상황보다 혁명의 과정에서 급속히 변화한다.
새로운 가능성들이 펼쳐지면서 인류의 지평은 급격히 확대된다.
잿빛 세계가 새로운 색채들을 띠게 된다. 
힘없는 자들은 오직 혁명의 경험을 통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고 시험하고 확대하기 시작하며,
마침내 새로운 세계를 운영하는 자의식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은 폭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자유의 확장과 모든 관련이 있다."

 - 다함께의 소책자, 21세기 사회주의, 사회주의 혁명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中






혁명적 좌파, 다른 말로 극좌파.
'너무 극단적'이란 것은 흔히 경계 대상이 된다.

하지만 급진적이란 것, 극좌파,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문제의 뿌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뽑아버리기 위해 노력한다.



하워드진의 희곡,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진정한 자유와 평화, 정의와 합리적인 세상을 원한다면 누구든 환영이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이 길에 함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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