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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원인생열심히일해도가난한우리시대의노동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사회학일반 > 사회비평에세이
지은이 안수찬 (한겨레출판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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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이렇게 생겼다. 현실이라는 땅에 발을 두고, 이상이라는 하늘에 머리를 둔다. 현실에 파묻혀서 땅에 붙어서만 살거나, 단단한 현실에 발을 두지 않은 채 하늘만 날아다니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현실에는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않은 것들이 많다. 사람의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기에 현실의 문제들을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아직 생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은 학생들은 종종 더 이상적이고 덜 현실적이다. 내가 그런 것 같았다.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부모님께서 용돈을 주시고, 등록금을 내주시기 때문에. 현실감은 잃고서, 추상적인 가치들만 머릿속에서 키워가는 것 같았다. 우려스러웠다.


이 책은 둥둥 떠올라 땅에서 멀어지려는 내 두발을 잡아주었다. 살기 위해서 발 딛고 서있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일깨워 주었다. ≪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는 <한겨레21>에서 연재한 ‘노동 OTL’ 시리즈를 묶어서 낸 책이다. 네 명의 기자들이 발로 뛰는 것을 넘어 직접 몸으로 때운 기록이다. 기사 특유의 건조한 문체로 현실을 말한다. 눈이 시리도록 맑은 렌즈로 현실을 곧게 비춘다. 그래서 더욱 가슴을 쿡쿡 찌른다. ‘노동’이라는 주제는 오래되고 낡았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친 지 40년이나 지났다.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노동’은 허공을 가르는 구호가 아니다. 불편한 현실이고 경험이고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투명인간들이 있다. 식당에 가면 ‘누군가’가 테이블에 음식이 담긴 그릇을 놓는다. 대형 마트에 가면 ‘누군가’가 물건들을 진열하고, 시식코너에서 고기를 굽는다. 이들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단지 음식을 나르고, 물건을 나르고, 고기를 구울 뿐이다. 한편 이 순간 어느 곳에는 ‘불법사람’과 ‘9번 기계’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불법 사람과 9번 기계는 내 방에 놓여진 가구를 만들고,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을 만든다. 이들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다. 국가와 법은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필요할 땐 놔두고, 그렇지 않으면 기를 쓰고 붙잡아서 나라 밖으로 컨베이어 벨트 밖으로 내동댕이친다.


투명인간과 사람이 아닌 사람들, 이들이 실체가 되어 다가온다. 40년 전 불꽃이 되어 책속에 갇혀버린 전태일이 내 곁으로 살아오는 순간이다. 이들은 식당에서 일하고 집에서 또 집안일하는 우리네 엄마이고, 발바닥이 닳도록 뛰는 내 친구이며, “힘들어”라는 외국어로 미등록 신분이라는 좌절감을 말하며 “괜찮아”라며 스스로와 동료를 위안하는 이주노동자이고, 뭘 시켜도 잘할 자신이 있지만 ‘다른 기회’를 주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열정 가득한 우리 청년들이다. ‘그’라는 존재였던 사람들이 ‘언니, 형, 동생’이 되어 살며시 손을 잡는다. 나도 너도 그렇게 ‘노동’이라는 같은 열차를 탄 사람들이다. ‘노동 자체’가 목적지라면 금세 피곤해질 테지만,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간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서, 절망하기는 쉽고 희망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함께라면 희망이 절망보다 빠를 것이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그냥 참고 견디던 아픔과 억울함을 모아서 함께 외칠 수 있다. 우리의 아픔과 억울함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외로움은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윤보다 사람을 위한 사회, 그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 다르지 않은 우리들이 서로 맞잡은 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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