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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1

빛냥 2010. 12. 22. 02:21
for me


<<개량주의와 변혁 전략>>, 김하영 최일붕, 다함께의 작은 책.




들어가는 말

개량이냐 변혁이냐 하는 문제는 국가 권력이 누구 손에 떨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에 있을 때만의 문제가 아니다. 변혁이냐 개량이냐 문제는 비혁명적 시기에도 운동이 실질적 개혁을 획득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개량주의는 다양한 자본주의 기구들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위로부터 변화가 올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자 실천이다. 그 압력은 정부나 그 산하기관에 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고, 투표일 수도 있고, 비폭력적 직접행동일 수도 있고, 여론일 수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변혁운동가들은 기존 기구들의 실체에 대한 착각을 배격하고 아래로부터의 행동에 역점을 둔다. 두가지 서로 다른 방식 때문에 체제의 특정 양상에 저항하는 행동 통일이 중단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이한 방식들이 이후 대책을 놓고 견해가 완전히 갈리는 것으로 바뀌는 지점이 마침내 도래한다. 가령 김선일씨 피랍정국에서 파병반대 국민행동의 주축인 주요 NGO들과 좌파민족주의자들은 대부분 파병 문제에서 "미국의 압력"을 부각시키는 한편, 노무현과 열우당의 자발적 능동적 참전 방침은 주되게 공격하지 않았다. 각각의 고비마다 논쟁의 승자가 누구냐에 따라 중요한 투쟁의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근본적 변혁의 승패가 결정되지는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람시는 사람들이 기존 사회에서 비롯한 사상들과 기존 사회에 맞서 투쟁한 데서 비롯한 사상들을 모두 머리 속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량주의자들은 자본과 그 정부의 행실에 항의해 변혁운동가들만큼, 아니 흔히 그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선전을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흔히 개량주의자들이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사회에서 비롯한 개량주의적 사상이 투쟁을 억제하는, 그것도 결정적 순간에 그러는 지점이 때때로 도래한다. 일부 개량주의자들은 자신의 낡은 사상과 결별하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때 변혁조직의 존재가 중요해진다. 만일 각 투쟁부문에서 전에 개량주의자들을 신뢰했던 사람들한테서 새로 변혁 운동 단체 성원들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사태의 전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변혁적 조직은 일찍이 사상의 차이가 덜 중요해 보이는 때부터 다른 활동가들을 체제의 작동 방식과 체제에 투쟁하는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인식 쪽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런 입지를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등록금과 청년실업의 문제.
개량주의자들과 함께 하려고 했다.
위로부터의 변화를 바라지 않고,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통해서 실질적 개혁을 획득하는 경험을 하고싶었다.
...





 




포퓰리즘


포퓰리즘은 '평범한 국민의 이익과 의견증진을 표방하는 정치'라고 일단 정의할 수 있다.
결정적인 요소는 '계급동맹'이다.
개량주의의 전형은 사회민주주의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사회적 기반은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이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타협 조건을 놓고 협상하는 사회계층이다. 노조 상근간부층은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 둘을 결속시키려 하기 때문에 기존 사회를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완전히 전복하는 것 사이의 타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고무하고 강화한다. 사회민주주의는 그러한 타협안을 제시한다.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고 유용하게 정의했다.

개량주의  >  조직된 사회민주주의 정당
미국에서 노동조합 내 개량주의는 많은 노동자들을 명백한 자본가 정당(사민주의아님)인 민주당에 매어두는 데 일조했다.

개량주의의 가장 근원적인 뿌리는 노동자 투쟁의 자기제한적 경향이다. 흔히 노동자 투쟁은 체제 자체보다는 체제의 일부 특정 양상들에 초점을 맞춘다. 노동자들은 조건의 즉각적 개선을 위해서 투쟁하거나 일부 특정 불의에 반대해 투쟁한다. 이것은 즉각적 쟁점들에 노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일 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불충분한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체제 전체보다는 체제의 일부를 더 잘 공격할 수 있다고 느낀다. 이것이 사실인 동안은 모든 노동자 투쟁은 타협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전투적인 것일지라도 모든 파업은 해당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이 일정 기간 서로 타협하는 협정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노동자 투쟁의 자기제한적 경향'이 개량주의가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현실이므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충분하지 못한 동안은 개량주의는 계속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의 실패는 좌파 개량주의의 부흥을 촉진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열우당과 명확히 차별화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자신감'은 체제자체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요소다.






운동 내 포퓰리스트들인 좌파 민족주의자들


이 나라 노동자 의식의 초기 발전 단계에서 노동자 운동의 정치는 포퓰리즘이기 쉽다. 이것은 민족분단.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 근래까지 군사독재를 경험한 것, 정치적 억압의 지속 등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할 수 있다.


계급협조(사회 최상층만을 배제한)정치로서 포퓰리즘은 개량주의의 한 형태이므로 지배계급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전임 정부와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김대중노무현의 통치 전략이다.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좌파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김대중은 집권 후반부에 진보진영 내 포퓰리스트들 사이에서 환상을 자아냈다. 이 개량주의적 환상을 이용해 김대중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할 수 있었다(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롯데호텔노조와 사회보험노조 탄압). 포퓰리스트들은 김대중이 북한에 화해적이고 협력적인 정책을 추구하려 애쓰는 듯하다 해서 그를 공격하는 것을 기피했다. 이후 김대중은 이를 이용해 투쟁 노동자들과 진보진영의 다수파(포퓰리스트)를 서로 이간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려 해왔다.

운동 내 포퓰리스트들은 좌파 민족주의자들이다. 이들은 통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그것을 위해 범계급적 단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는 남북화해가 계급투쟁에 선행해야 한다. 잘 조직돼 있는 덕분에 좌파 민족주의자들의 핵심을 이루는 주체주의자(남한판 스탈린주의자)들은 이것을 2단계 혁명론과 민중전선(국민 연합) 전략으로 정식화하고 있다.

[간혹 주체주의자의 스펙트럼을 너무 넓게 잡는 경우가 있다. 주체주의자들은 좌파 민족주의자이지만 좌파 민족주의자가 다 주체주의자는 아니다. 통일운동 세력 가운데는 북한과의 연대를 강조하지만 북한에 비판적인 세력들이 있는데, 그들이 북한과의 평화교류에 앞장선다 해서 다 주체주의자들인 것은 아니다. 또, 황장엽은 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인물이고, 여전한 주체사상 신봉자를 자칭하지만(그는 김정일이 주체사상을 더럽혔다고 말한다), 그런 세력도 여기서 우리가 말하는 주체주의자들이 아니다.]

스탈린주의의 혁명단계론에 따르면 민족해방(스탈린주의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민족해방은 민족통일을 뜻한다)이 먼저 오고 사회주의적 변혁은 그 다음에 와야 한다. 민중전선은 1934년 중엽 이후 스탈린이 추진한 정책으로, 파시즘에 반대해 부르주아 정치세력까지 포함한 '민주대연합'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1936년 수립된 스페인과 프랑스 민중전선 정부들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부르주아 정당과 동맹하는 정책은 노동계급이 반동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마비시킨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앞서 언급한 2001년 7월 상황에서 힐끗 볼 수 있었다.


(2001년 2월 대우차노조의 저항을 제압한 정부는 자신만만해져 그후 맹렬하게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설상가상으로 포퓰리스트들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김대중 퇴진이라는 "무모한" 발상을 조장했다고 비난했다. 그 덕분에 정부는 더욱 자신만만해졌다. 그러나 4월 중순 쯤 정부는 무리를 하고 있었다. 공장 출입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항의하던 민주노총 소속 변호사를 경찰이 구타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항의운동이 물결쳤다. 7월로 예정됐던 민주노총 총력파업은 바로 이런 분노를 표현하겠다는 노조 지도자들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들과 다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문화협과의 공동행사를 위해 김대중 정부와의 충돌을 피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 파업은 시작되기도 전에 취소됐다. 운동 내 포퓰리스트들은 2004년 말에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열우당을 지지하는 전술을 채택했다. 열우당이 형법보완 등 모종의 대체입법을 공공연히 얘기했는데도 말이다.)

주체주의자들은 민중전선 전략에 따라 '민족화합적' 자본가들과 냉전적 자본가들을 구별한다. 놀랍게도, 죽은 정주영과 수감중인 김우중이 민족화합적 자본가에 포함된다. 현대와 대우가 북한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주영이 죽었을 때 범청학련은 조문을 하기까지 했다. 이런 종류의 자본가들과 동맹함으로써 이회창과 <조선일보> 같은 냉전 우익에 대항하려 함에 따라 주체주의자들은 노동자 투쟁을 외면하고 때로는 2001년 7월에 그랬던 것처럼 파업도 단념시켜야 한다.

계급연합은 위험하다.








스탈린주의가 민족주의를 전폭 수용한 것과 달리, 진정한 맑스주의는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도 결코 수용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을 얘기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이비 맑스주의다. 언제나 민족주의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진정한 적 - 민족 자본가든 외국 자본가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 - 의 이해관계에 묶어두는 수단이다. 그래서 진정한 맑스주의는 민족주의를 반대한다. 평화정착이나 통일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감수하라고 요구하는 것에 맑스주의는 반대한다. 주체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계급 이해관계에만 얽매이지 말고 통일운동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정당 사회단체와 함께 한 세력으로 참가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맑스주의는 민족자결권을 지지한다. 민족자결권에는 분리권과 국가간 자발적 통합권이 포함된다. 그래서 맑스주의자들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적 민족통일을 지지해야 한다. 


괜한 반감으로 민족주의, 자민통을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정서를 이해하고 민족자결과 통일을 지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주의 안에서 모든 민족의 통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로운 민족의 자유로운 연합이어야 한다. 그것은 강압으로 강제될 수 없다.)


맑스주의가 피억압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오히려 민족주의의 뿌리를 근절하기 위해서이다. 더구나 조선 민족은 민족의 의사를 거슬러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의 이루어진 데 이어, 분단된 두 국가가 대량살육이 수반된 전면전을 치른 적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분단의 고통은 특히 전쟁이 남긴 상처에서 비롯한다) 남북 민중은 하나의 국가로 통합해 살 권리가 있다.

물론 통일은 노동계급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니다. 계급투쟁보다 부차적이다. 남과 북이 갈라져서 살아 온 60년동안 남북 모두에서 그 체제를 변혁시킬 주체인 노동계급이 형성됐다.










주체주의 정치


주체주의자들은 주체사상이 "자주성,창조성,의식성을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독창적 철학 사상" 또는 "맑스-레닌주의의 창조적 계승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체사상은 조금도 창조적이지 않고, 진정한 맑스주의, 진정한 레닌주의와 조금도 닮은 점이 없다. 주체사상은 한 마디로 말하면 스탈린주의의 북한판이다.

스탈린주의란 사회주의를 참칭하며 스스로 국가자본주의지배계급이 된 옛 소련 관료의 이데올로기였다.

북한의 이른바 '사회주의' - 이 말을 공산주의의 초기단계로 이해하든 프롤레타리아독재로 이해하든 또는 두 가지 모두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든 - 는 한낱 국가자본주의에 지나지 않는 모조품이며, 그 사회의 지배계급인 국가관료가 때때로 들이미는 '마르스크-레닌주의'는 야바위일 뿐이다. 북한 사회를 사회주의 사회라고 선전하는 단체에게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북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사라들에게 사회주의와 전혀 관계 없는, 아니 반사회주의적인 것을 사회주의라고 허위광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 국가자본주의, 스탈린주의 -


내전을 겪고, 국제혁명도 (서구 사회민주당들의 배신과 신생 공산당들의 미숙함 때문에) 패배한 상황에서 볼셰비키당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 소비에트 러시아 내에서 국가권력을 상실할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국제 노동자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충실할 것인가, 아니면 국가권력을 고수하고 국제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포기할 것인가. 스탈린주의는 후자 선택의 산물이었다. 즉, 스탈린주의의 핵심은 한 나라에서도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일국사회주의'론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경험은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이 한 나라에 고립돼서는 무한정 생존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일국의 노동자 혁명이 오래 고립되면 외국의 개입에 의해 전복되기 쉽다. 설령 전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세계 자본주의의 압력 때문에 자본주의적 조건에 따른 경쟁을 강요당하게 되고, 따라서 착취와 계급분화의 부활을 피할 수 없다. 즉, 사회주의적 혁명은 생존하려면 확산돼야 하며, 사회주의 사회는 한 나라에서는 건설될 수 없다.


그러나 '일국사회주의'(실천에서는 국가자본주의로 끝났다) 건설에는 무자비한 논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자본주의 나라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주의는 민족주의(국가주의)를 수용함으로써 가장 조잡한 대러시아 국수주의로 전락했다.



북한의 탄생 - 


북한은 동유럽의 소련 위성국들과 마찬가지로 소련군 탱크에 의해 수립된 국가였다. 김일성과 조선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을 "해방자"로 여겼고, 소련은 북한에 대해 당연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스탈린은 "다른 나라를 점령한 승전국은 자신의 군대가 그렇게 할 힘을 갖고 있는 한, 자신의 체제를 점령당한 나라들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도 스탈린의 모델을 그대로 따라 한반도 이북에서 급속한 공업화('일국사회주의')를 이루려 했다.


주체주의의 탄생 -


그런데, 독자적인 민족적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하려는 김일성의 시도는 아이러니이게도 북한을 위성국 지위로 격하시키고자 하는 소련의 의도와 충돌하게 된다. 소련은 자국의 자본 축적을 위해 북한의 독자적 국가자본주의 건설에 해가 되는 정책을 강제하려 했다. 북한을 소련의 경제적 필요에 종속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른바 '전리품'으로 공장 설비와 쌀을 챙겨갔는데, 소련은 이것을 극동 지역으로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철도보안대까지 창설했다. 동유럽 모든 위성국가들에 강요된 불공정거래는 북한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 당국은 1964에 이렇게 폭로한 바 있다. "이 두 공장(평양 방직공장, 흥남 비료공장)과 그 밖의 공장의 복구건설에 준 원조에서 당신들(소련)은 국제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설비와 스테인레스 강판을 비롯한 자재를 주고 그 대가로 우리로부터 수십 톤의 금과 다량의 비싼 비철금속과 원료를 국제 시장 가격보다 훨씬 싼값으로 가져갔다."

물론 김일성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와 달리 국내 기반이 탄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련의 후원으로 기반을 튼튼히 만들기 전까지 소련에 대들지 않을 만큼 책략에 능한 인물이었다. 티토는 1948년에 스탈린과 관계를 단절했는데, 북한 정권이 공개적으로 소련을 비판하기 시작한 것은 1963년이 돼서였다.

'사회주의 형제국'이라는 허울과는 달리, 소련과 북한 지배계급들의 경제적 욕구의 차이가 두 국가 사이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중공업 우선정책"을 둘러싼 로동당 내 논란에도 이런 점이 반영돼 있었다. 1953년 8월 로동당 중앙위 6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전쟁의 폐허 위에서 급속한 재건을 다짐하며 "중공업 우선정책"을 표방한다. 스탈린이 1930~4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마침 스탈린이 죽은 직후 소련에서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경공업 균형발전이라는 양보조치가 취해졌다. 장기적 관점에서도 소련은 원시적 축적단계에서 성숙한 국가자본주의로 이행할 필요가 있었고, 이를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관심을 가져야 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폐허 위에서 새로운 공업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들도 마다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북한으로서는 끊임없는 희생과 무자비한 동원을 요구하는 스탈린주의 이데올로기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로동당 내 일부 인물들(소련계인 내각 부수상 박창옥/ 연안계 최창익/ 상업상 윤공흠 등)은 소련의 노선이 옳다며 김일성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은 소련의 후원을 받고 있었는데, 소련은 김일성을 의심스럽게 보고 있었던 듯하다. 소련은 1940년대 말과 1950년대 초에 동유럽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의 공산당 지도자들 대부분을 "티토주의자"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사건도 김일성을 압박했다. 1954년에 소련은 박헌영 '간첩사건'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며 조사단을 파견하려 했다. 김일성은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절하고, 1년 뒤 사형판결을 내린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는 박헌영 이승엽 등 남로당계가 "미제 간첩"혐의로 처형된다. 김일성은 급속한 공업화를 위해서도, 당내 다른 분파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소련으로부터 독자적인 노선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김일성이 사대주의 비난과 "주체"를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1955년 12월 당 선전선동부문 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은 첯음으로 "주체"에 대해 연설한다(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 그는 "인민국 휴양소에 아름다운 금수강산 대신 시베리아 초원 그림이 걸려 있다"거나 "인민학교에 우리나라 위인 사진은 하나도 없고 마야코프스티나 푸슈킨 같은 외국사람들의 사진만 걸려 있다"고 불평했다. 그리고는 "우리나라의 투쟁 역사와 문화유산을 존중하고, 소련식이나 중국식이 아닌 우리식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동당 사상사업의 주체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 "조선혁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6 8월 종파사건
~1961 김일성 반대 세력(소련계 연안계) 체포,투옥,처형
1961 로동당 4차대회 김일성 승리자 대회




주체사상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확립된 것은 1961년 이후였다. 주체사상은 북한 국가자본주의 건설을 위해 중공업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끊임없는 희생과 무자비한 동원을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인데, 모든 사람들을 급속한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에 통합시키기 위해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김일성은 자신이 소련과 중국 같은 대국의 노선에 복종하지 않고 북조선의 이익을 위해 독립적으로 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인민의 마음을 묶어두고자 노력했다.





주체사상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강조하는데, 쉽게 말해 이것은 사람은 노력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관료의 관점에서 "무엇이든"은 협소한 자원으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고, 이를 위해 믿을 것은 인민의 노동력밖에 없었다.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라는 표현은 박정희가 즐겨썼던 "산업역군"이라는 표현과 비슷한 것이다. 노동력을 쥐어짜기 위해 북한 당국은 한편으로 억압적 통제를 강화했다. 천리마운동 같은 '속도전'을 이름만 바꿔 계속했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전시체제에서 비롯한 노동규육을 고수했다.

(직장 책임자의 권한에 의해 필요한 경우 2~4시간 이내의 시간외 노동을 시킬 수 있으며 정기적 및 보충적 휴가의 허여도 보류할 수 있다. 직장을 임의로 이탈한 자는 재판에 회부하여 인민재판소 판결로써 6개월 이상 1년 이하의 교화노동에 처한다. 등)






다른 한편으로 인민의 사상의지를 강조했다. 인민은 아무리 힘들어도 경제건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상의지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생산력 발전에서의 사상의식의 역할"이 매우 강조됐다.






주체사상의 매우 중요한 요소로 수령론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수령론은 인간이 자주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난 지도자 수령이 필요하며, 수령 없이는 민족도 자주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주체주의의 "대중노선", 이른바 "대중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수령론은 '완전무결한 지도자'론이고 한 마디로 말해 일인독재 이데올로기이다.

요컨대, 주체사상은 맑스주의나 레닌주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북한 관려의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주체사상을 한다발의 철학체계로만 여기고, 북한 국가자본주의 건설에서 한 역할을 주목하지 않는다면 주체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

북한 관료와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

조선 로동당은 지배계급의 당이다. 즉 기업경영자, 보안경찰 수뇌 그리고 군장성의 당이다. 

의심할 바 없이 남한의 주체주의자들도 그런 지위를 갈망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체제에 일차적 충정을 보낸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남한의 기성체제로부터 완전히 배제돼 있다. 뿐만아니라, 나한에서 주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온갖 탄압과 고통과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수많은 진지한 투사들이 그것을 마다하지 않고 주체주의자가 됐다. 


이데올로기 전에 먼저 사회세력을 봐야 한다. 북한 관료는 어떤 견지에서도 우리의 동지가 아니지만, 남한의 주체주의자들은 우리 운동의 일부이고 동지들이다.


북한 관료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은 1980년대 중반 남한의 독재 체제를 확 뒤엎어버리고 싶었던 청년들을 사로잡게 된다. 그 뒤 남한 운동 안에 최대 세력으로 자리잡은 주체주의자들의 존재는 물질적 조건으로서 북한 국가의 존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련이 몰락하자 서방 공산당들이 몰락했던 반면, 북한 국가가 버티고 있기 때문에 주체주의자들이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1990년대 중엽 이후 북한이 식량난과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동안 주체주의자들도 약화되고 분열을 거듭했다. 주체주의자들이 사기저하를 극복한 것은 1998년 인공위성 발사 덕분이었다.

주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북한 정권에 대한 지지이고 북한 정권의 외교정책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이 점이 주체주의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할 수 있다. 주체주의의 다른 핵심적 요소들을 언급할 수 있지만, 사실 주체주의자들에게 이론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스탈린주의자들은 이론을 경시한다. 그들에게 이론은 외부적으로 결정된 실천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다. 예컨대 북한이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거부하는 동안, 유엔은 미국의 부속물이고 동시가입은 "분단 고착화 시도"였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결정하자 그것은 남북 화해협력이 됐다. 북한이 미국 소련 데탕트를 비난하면(1962년) 그것은 "수정주의"였고, 북한이 미국-중국 핑퐁외교를 칭송하면 그것은 "사회주의 외교의 승리"가 됐다.


북한 정권의 외교정책에 종속된다는 것은 남한과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이해관계보다 북한 정권 방어를 더 중요한 일로 여기고 앞세운다는 뜻이다. 1960년대 발표된 북한의 '남조선 혁명'론에는 이런 입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었다. 북한의 남조선혁명론은 "북반부 혁명적 기지의 가일층 강화"였다. 흔히 "민주기지"론은 북한의 체제를 남한으로 확산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남한의 운동이 민주기지인 북한 강화에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일국사회주의가 가능한 것이라면, 남한에서의 혁명은 골라도 되고 안 골라도 가능한 것이라면 그만인 일종의 덤 같은 것이 된다. 그 결과 남한 주체주의자들은 북한의 국경수비대 구실이나 하게 하는 것이다.

남한 주체주의자들의 으뜸가는 임무는 북한에 적대적인 군사개입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이고, 남북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남한 내 활동의 수위를 조절하고, 남한 정부에 대해 개량주의적 압력집단 구실을 하는 것이다. 지금 주체주의자들이 모든 것에 우선해 미국의 대북 전쟁책동 반대 주장과 활동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반면, 북미관계가 부드러워지면 주체주의자들의 태도도 달라지곤 했다. 

 1994년 10월 제네바합의, 1999년 페리 프로세스 - 한창 진행중일 때
1994 보스니아 내전 개입, 1999 세르비아 상대로 한 코소보 전쟁 - 미국의 악행 전혀 진지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관계가 안 좋을 때 (남북협상이 결렬됐다거나 두 정부 간에 비난이 오갈 때) 주체주의자들은 남한 정권과 맞서 투쟁한다. 하지만 남과 북이 밀월관계에 들어가면, 남측 정권에 대한 공격을 삼간다. 남한 정권이 노동자 운동을 탄압하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김정일은 공개적으로 "민족 앞에 계급의 이익을 앞세우지 말라"며 김대중이 남한 노동자운동을 맘껏 탄압하도록 허용했다.



우리동지들이 북의 지배자들을 동지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소 흐규..




이것은 해방 직후 조선공산당이 미군정에 협조해 남한 노동자 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던 것과도 비교할 수 있다. 소련은 당시 미국영국 연합국과 협조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공산당으로 하여금 미국에 협조하도록 지시했다. 국제노동운동사를 돌아보면, 스탈린주의가 국제 노동계급 운동을 혼란과 사기저하로 몰아넣었던 사례는 무수히 많다. 

(탈북자 불인정도 북한 옹호를 위해 노동계급의 연대를 희생시키는 일이다. 사회주의자는 노동자들을 서로 분열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을 약화시키는 지배계급의 모든 위선적 사상과 분열지배(각개격파)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한다. 맑스주의자는 인종차별에 근거한 지배자들의 이주규제에 반대한다. 이주노동자들과 탈북자들은 자유로이 입국해서 안심하고 이 땅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전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 왕래할 수 있는 것이 국제 노동계급에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 왕래를 비록한 해외여해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은 국제주의의 한 주된 요소이다.)


물론 이런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노동자 운동에 기반이 있어야 한다. 운동이 떠오르면 이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때 주체주의자들은 북한 관료에 유리한 내용을 이 운동에 부여하고 얹어놓기 위해 애쓴다. '대북압박 반대', '반미', '6 15 선언 이행' 같은 구호들을 그와 구체적 관계가 없는 것에 꿰어맞추는 식이다. 주체주의자들은 남한 운동의 이익과 북한 관료의 이익 사이에서 중재자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1.
북한의 국경수비대 구실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관료적으로 통제될 필요가 있다. 원칙에 근거하고 조직원들이 민주적으로 토론해 조직의 방침을 정하는 방식은 적당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주체주의자들은 항상 정치보다 조직을 앞세우고, 토론과 논쟁보다 조직방침 따르기를 앞세운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일치단결하고, 지도자의 명령에 자신을 복종시킬 때 단일한 전선대오 구축이 가능하다."(전국연합 박세길 조직국장) 하지만 아무리 조직적으로 통제한다 해도,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는 주체주의자들의 태도에 대한 환멸을 막을 수는 없다.(1956년 헝가리 혁명 진압 후 피카소가 공산당을 탈당했듯이). 이 환멸감 때문에 심지어 우익 성향으로 나간 그룹이 "강철" 김영환과 옛 한총련 핵심 간부들이 관여하고 있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같은 단체이다. 김영환은 1980년대 중엽에 주체사상을 소개하는 팸플릿을 내어 선풍을 일으켰던 인물인데, 민족민주혁명당(반제청년동맹의 후신)을 만들고 북한 당국과 직접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CIA의 힘에 의존해서라도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과제라고 주장한다.

정말로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는 성품과 헌신..
그러나 그것이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는' 혐오스러운 일을 포장하기 위함이라면..





2.
주체주의자들은 남한 노동계급의 주체적 역량을 믿지 않고 여기에 의존하지 않는다. 주체주의자들은 "주체적 관점"을 강조하고 항상 "대중을 신뢰하라"고 역설해왔으나, 그와 동시에 지난 십여 년 동안 남한 운동에 대해서보다 북한 정권에 대한 의존을 더 키워 왔다. 전국연함 박세길 조직국장은 민족자주화 운동에서 북한이 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 세 단계로 변화해 왔다고 지적한다. 1단계는 "북한의 존재를 장애물로 인식"하는 단계이고, 2단계는 "민족자주화 운동에서 남측 민족민주운동이 주동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단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3단계, 즉 "민족자주화 운동에서 이북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이 결정적"이라고 보는 올바른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주체주의자들은 지금을 "조국통일 대사변기", 즉 "가까운 시기에 조국통일이 되는 것은 확정적이며 다만 시간 문제"인 상황이라고 보는데, 이런 정세를 가져온 것은 전적으로 이북의 공 이라는 게 주체주의자들의 평가다. 특히 그들은 1998년 광명성 1호(대륙간 탄도미사일)가 민족자주화에서 결정적이라고 본다. 그 동안 "민족민주운동"은 주한미군과 군부를 변혁운동의 최후 장애물로 인식해 왔는데 솔직히 이것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지 해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광명성 1호가 "피흘리는 혁명전쟁을 수행하지 않고도 변혁운동 승리를 이끌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북한 식량난과 탈북 행렬에 기가 죽었던 주체주의자들은 1998년 인공위성 실험에 엄청난 고무를 받았다. 오죽했으면 2000년 매향리 투쟁을 방문했던 일단의 사람들은 그 곳에서 광명성2호라고 쓰여진 연을 날렸다고 한다.

이처럼 주체주의 변혁론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하지 않는다. 주체사상의 "자주성"은 자기해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주체주의자들에게 사회 변화(그것이 민족자주가 됐든 통일이 됐든 또는 사회주의가 됐든)는 무오류의 지도자들, 조선로동당, 소련탱크,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오는 것이다.

본의아니게 자꾸만 사람들을 수동화시키는 것. 당과 계급에 대한 개념과 관련있다




3.
주체주의 정치는 제3세계 민족주의이고 오늘날 그것은 개량주의 계급협조주의로 나타난다. 1985년에 등장한 주체주의는 처음에 Anti Imperialism으로 알려졌다. <반제민족해방투쟁의 기수로 부활하자>는 팸플릿은 "한반도 100년 역사는 제국주의의 침략과 약탈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였다"라는 <공산주의자 선언>의 구절에 항의라도 하듯이, "한국 현대사는 미제국주의와 한국민중 간의 투쟁의 역사였다"라고 썼다. 

급진적 투쟁..그치만 변혁론의 실제 내용은 매우 온건했다. 남한 변혁 운동의 임무는 일부 "매판세력"을 제외한 노동자,농민,학생,'민족자본가'까지 총단결해(계급동맹) 미국으로부터 해방을 이루는 것. 이런 사상은 사회의 후진성때문에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중간계급 일부에게 딱 맞는 것이었다. 선거에 의한 "자주적 민주정부"수립. 집권 뒤 국가기간산업과 독점기업의 국유화를 내세운다.


그리고 이 집권은 특정 세력에 의한 단독집권이 아니라 자주민주통일을 지지하는 모든 세력의 연합정권이어야 한다고 주장. 사상과 정견이 달라도 자주민주통일을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주체주의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력은 시민운동이다. 전국연합은 민주노동당을 혁신강화한 뒤 시민운동 등도 총망라하는 새로운 정당으로 재창당하기를 바라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협소한 계급정당일 뿐 통일전선적 대중정당이 아니다...



어쨌든, 예나 지금이나 주체주의자들은 남한이 미국의 식민지이고, 이로부터의 '민족해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한은 신생독립국 가운데 자본주의 성장을 이룬 몇 안되는 신흥 공업국이다. 그러므로 남한 사회변혁의 목표가 민족해방일 수는 없다. 자주민주통일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과제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억압당하는 민족의 해방투쟁을 지지한다. 하지만 민족주의자들과는 전혀 다른 동기와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민족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지구 한 귀퉁이에 자기네가 통치할 영토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으로 여긴다. 따라서 민족해방을 최우선 목표로 삼으며, 그를 위해 민족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맑스주의는 민족해방을 수단으로 본다. 진정으로 노동계급의 연대를 위해 민족억압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마치 레닌이 폴란드 노동자와의 연대를 위해서 러시아 노동계급은 폴란드의 독립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민족해방 투쟁에서 노동계급의 독립성을 굳게 지켜야 한다. 부르주아적 과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민족해방은 수단일 수밖에 없딩..
자본주의는 세계체제이기 때문에 이를 대체하는 체제도 전 지구적이어야 한당




소련 몰락으로 서방 공산당들이 몰락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는 스탈린주의가 거의 죽었다. 세계 대부분 나라의 고전 맑스주의자들에게 스탈린주의는 더는 세력있는 골칫거리가 아니다. 반면 주체주의자들은 북한 국가가 위기 속에서도 버티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남한운동 내 다수세력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위기가 계속되고, 북한이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애쓸수록 남한 주체주의자들은 한층 계급 협조적이고 한층 개량주의적으로 처신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참 특수하고 스펙타클하고 피곤하고낭..
그치만 쉬운 건 재미없으니까 힘내야짓



북한이 위기에 빠지고, 남한 주체주의자들이 북한의 방어할 수 없는 것들을 방어하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대중적 지지를 잃고, 내부에서도 환멸과 반발감이 자랄 수 있다. 북한의 위기를 사회주의의 위기로 이해하지 않기. 주체주의 정치의 문제를 인식하고 사회주의 정치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이 공백을 메우기. 맑스주의자의 임무다. 맑스주의자는 '일국사회주의'가 아니라 국제주의를 한결같이 옹호해야 한다. 레닌은 러시아사회 민주노동당 강령초안(1895년 12월-1896년 6월)에서 "러시아 노동계급 운동은 그 성격과 목적에서 만국 노동계급 국제사회주의 운동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역사적 경험은 국제주의를 저버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노동계급도 저버리고 만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위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에 기초한 조직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주체주의자들과 함께 공동전선 활동을 해야 한다. 주체주의자들은 공동전선 안에서 강령적 통일을 목적으로 하므로 종파적이고 통제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참고 끈기있게 활동해야 운동 안에서 스탈린주의와 포퓰리즘에 대한 진정한 대안을 건설할 수 있다.

끈기.인내심.참을성.젤중요하다



공동전선 전략

혁명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결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공동전선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궁극 목표의 성취 수단과 방법에 대해 서로 견해를 달리한다. 심지어 궁극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어떤 즉각적 행동을 통해 자본을 약화시키고 피억압 계급들의 이익을 증진시킬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서로 동의한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싸울 수 있다. !

이러한 공동 행동은 대중(말뜻 그대로 '많은 사람들') 행동이어야 한다. 개량주의자들은 선전 위주의 소수 행동을 선호한다. 그러나 기자회견, 1인시위 등등은 주로 대중 행동을 준비하는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어야 한다. 의회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권력층이 좌절시키려 무진 애를 쓰는 개혁입법은 대중투쟁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 한은 입법단계에서든 집행단계에서든 좌절되게 돼 있다. 그러므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에게 의회는 반자본주의 선전의 장으로서만 의의가 있다. 물론 대중투쟁을 위한 반자본주의 선전이다.


공동전선은 가장 단순한 요구들로써 가장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반전운동은 미국과 한국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든 운동에 연루시키려 애써야 한다. 그가 노무현,반미구호,한미동맹,노동계급의 참가 등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주장하든 말이다)


공동전선 안에서 활동하는 것이 공동전선 속으로 용해돼 버리는 것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는 데에 지대한 관심을 두어야 하지만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공동전선 활동을 하는 또 다른 목적은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자기 조직의 이익을 위해 운동을 이용한다'는 자율주의적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운동을 찬탈하거나 운동을 대리하기 위해서 개입하는 듯한 스탈린주의 또는 개량주의 조직들이 있다. 그러나 운동과 정치조직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운동을 건설하는 과정과 정치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은 원리상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정치조직은 운동을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운동에 개입한다. 운동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든 운동이 성공하기 바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운동이 성공할 것이라는 나름의 전망이 있다. 이 전망들을 둘러싸고 논쟁하면 된다. 추상적이고 종파적인 방식으로 논쟁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투쟁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맺음말

새롭게 등장한 운동과 일체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뭔가 자신들과 운동을 구별해 주는 표지를 찾아내려 애쓰기보다는 운동과의 공통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주류 사회에 대한 반감이 크고 자본주의적 가치와 불의에 분노하지만 기존 조직좌파와 연관을 맺고 있지는 않는 새로운 청중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운동을 큰 규모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과 그 안에서 사회주의자의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중 과제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 수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


영국의 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혁명적 조직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원칙을 수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관점, 전략, 전술, 조직형태, 정신적 습관, 심지어 말투조차도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한다."